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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 · 123분

로맨스 · SF

평범한 소년 티엔은 스무 살이 되어 아버지로부터 가문의 남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고교 시절 첫사랑인 란시엔을 다시 만나기 위해 자신의 비밀스러운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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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과거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응?” 

 

 란시엔이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토요일 오후 6시, 두 사람은 근사한 레스토랑의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파인 다이닝. 두 사람 모두 척 보기에도 신경써서 단장한 티가 났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매주 수많은 연인들과 피튀기는 경쟁을 해야 한다. 가장 인기 많은 토요일 저녁, 가장 인기 많은 창가 자리를 차지한 난공티엔은 단연 이 주의 승리자였다. 

 

 ‘토요일 저녁에 데이트 해요.’ 다음 이어지는 ‘제가 예약한 식당 있어요’, 또 그 다음 이어지는 ‘…형한테 할 말 있어서요.’ 를 듣고도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란시엔은 어벙하지 않았다. 게다가 예약했다는 레스토랑은 북경의 젊은 연인들이 ‘특별한 날, 그 사람과 함께하기 좋은 식당 TOP 10’을 논할 때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곳이 아닌가. 몇 년간 연애한 남자친구가, 주말 저녁에, 할 말이 있다면서 근사한 레스토랑 예약 번호를 보내온다면?: 란시엔의 답은 당연히… ‘각오한다’ 였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그러나 현실은 란시엔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멋진 표정과 아무렇지도 않은 승낙 대사를 준비했던 란시엔은 대차게 삐끗하고 말았다. 서버의 도움을 받아 코스와 와인을 주문한 티엔은 식사를 하면서도 몇 번이나 어떤지, 괜찮은지 물었다. 그때마다 란시엔의 대답은 ‘응, 좋아’ 였다. 그도 몰래몰래 연습을 한 것이다. 목이 탄지 와인잔을 계속해서 입가로 가져가는 티엔을 보면서 란시엔은 절대로 그를 무안하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제가 형한테 할 말 있다고 했잖아요.’ 다음 이어지는 ‘사실은, 오늘 이렇게 부른 거 고백하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다음 이어지는 ‘고백’이란 게 이런 내용이었을 줄은. 대체 그 누가 상상할 수 있겠냐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은 잔상이 길어 계속 머릿속을 뎅뎅 울렸다.  

 

 “……거짓말하는 거 아니에요.” 

 

 란시엔의 반응을 본 티엔이 급하게 덧붙였다. 란시엔은 아차했다. 

 

 “그, 그렇겠지. 네가 나한테 거짓말을 왜 해.” 

 

 실수했단 마음에 이쪽도 급하게 대꾸했지만, 어쩐지 엉성한 대답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에게 과거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고백을 단숨에 ‘응, 좋네’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쪽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럼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평범한 거지? 의심해야 했나? 생각은 길어지기만 하고 갈피는 잡을 수가 없었다. 단단히 각오했지만, 이런 고백은 예상의 밖의 밖의 밖이다. 몇 년을 보고, 또 몇 년을 만났는데도 늘 이랬다. 티엔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었고, 란시엔을 혼란스럽게 했다. 

 

 “믿기 힘드실 거 알아요.” 

 

 있는 힘껏 얼굴 근육을 끌어올려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아무래도 별 소용이 없던 모양인지 티엔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지금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긴 한데.”

 

 란시엔은 결국 멀쩡한 척을 포기하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만나오면서 티엔이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일부러 장난을 치며 란시엔을 속이거나, 쓸데없이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란시엔은 초능력과 시간여행, 독심술, 자연발화라든가 텔레키네시스 같은 초자연현상을 믿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이뤄온 모든 상식만큼이나 티엔을 믿고 있었다. 믿으니까 더 난감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장난을 치나, 할 수도 별 말을 다 한다며 웃으며 넘겨버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괜찮아요. 믿기 어려울 거란 것도 알고요.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처음?” 

 “제가 스무 살 때요.” 

 

 현실감각이 반쯤 빠진 상태에서도 멀쩡한 듯한 대화가 주고받아졌다. 메인디쉬를 한참 지나 디저트가 나온 순간임에도 지난 요리들의 맛이 거의 기억나질 않았다. 그건 티엔도 마찬가지인지, 난공티엔은 아직도 긴장한 표정 그대로 뻣뻣하게 커트러리를 잡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건 판나코타인데도 말이다. 이러다간 스테이크용 포크와 나이프로 판타코타를 썰어 먹을 기세라 란시엔이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샤오티엔?” 

 “역시 말로는 설명 못 하겠어요.” 

 “응?” 

 “직접 보여줄게요.” 

 

 뜻 모를 말을 뱉은 티엔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란시엔의 손목을 잡아당겨 일으킨 뒤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아? 샤오티엔, 어디 가는 거야?” 티엔은 대답하는 대신 무언가를 찾는 듯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그의 발이 멈춘 곳은 청소도구함 앞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티엔은 비장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잠깐… 아니지?” 

 “잠깐이면 돼요.” 

 “아니, 뭘? 뭐가?” 

 

 티엔이 대답 대신 청소도구함 안으로 란시엔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은 빗자루와 청소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어둡고 캄캄했다. 비좁은 청소도구함에 건장한 성인 남성 둘이 들어가 있으니 온몸이 딱 밀착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란시엔은 장난치는 걸 좋아했지만, 동시에 지극히 상식적인 청년이기도 했다. 잘 차려입고 레스토랑에 와서 굳이 먼지 투성이인 청소도구함 안으로 들어간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는 이렇게 안 좁았는데….” 

 

 다행히 란시엔의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전에, 티엔의 당황한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원래는?” 

 “네, 혼자 있을 때는….” 

 “으하하… 뭐야, 그게. 이런 걸 몇 번이나 해 본 사람처럼 말을 해.” 

 “…맞긴 한데요.” 

 

 바보 같은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자 긴장이 약간 풀렸다. 시선을 살짝 틀어 티엔을 바라보자 붉어진 귀 끝이 보였다. 란시엔이 소리내서 웃었다. 어쩐지 이 모든 상황이 웃기게만 느껴졌다. 티엔이 민망한지 살짝 목을 가다듬더니, 고개를 약간 숙이고 귓가에 속삭였다. 

 

 “눈을 감고, 가볍게 주먹을 쥐어 봐요. 양 손 다요.” 

 “음, 했어.”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어요?” 

 “미래로도 갈 수 있는 거야?” 

 “아뇨, 과거만요. 집중해서 가고 싶은 때를 생각해야 돼요.” 

 “음, 그럼… 2주 전에 우리 공연 봤을 때?” 

 “왜 그 때에요?” 

 “중간에 놓친 대사가 있어서 다시 보고 싶어.”

 

 그 말을 듣자 티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게요.” 하는 말과 함께 티엔이 심호흡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란시엔은 현실감이 없어서, 이 모든 행동들이 장난이었다 해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눈꺼풀 위를 덮은 암흑이 콜라캔을 좌우로 흔드는 것처럼 세차게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머리를 잡고 휙 돌리는 것 같은 감각에 시야가 한쪽으로 쏠리고 멀미가 났다. 제대로 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흔들림이 멈췄다. 

 

 “…형, 괜찮아요?” 

 “괘, 괜찮긴 한데.”

 

 어질어질한 감각을 겨우 붙잡고 있자 티엔이 가볍게 등을 쓸어주었다. “일단 나가요.” 하는 말과 함께 청소도구함이 달칵 하고 열렸다. 문틈으로 조명이 쏟아져 들어오자, 그 사이에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얼굴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한 발짝을 내딛어 비좁은 청소도구함을 빠져나왔다. 어질어질한 의식을 가다듬고 나니 주변의 풍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2주 전, 두 사람이 공연을 보러 왔던 극장 복도였다. 정확히는 극장 복도에 놓인…  청소도구함 앞. 

 

 “여기… 진짜?” 

 “아, 얼른 가요. 곧 시작해요. 10분 남았어요.” 

 

 티엔이 익숙한 듯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손을 끌어당겼다. “어, 어어.” 란시엔은 다시 얼빠진 소리를 내며 그 뒤를 쫓았다. 청소도구함에서 나온 두 남자를 보고 수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신이 얼얼한 감각에 부끄러워할 틈도 없었다. 둘은 복도를 빠르게 걸어 공연장 입구에 도착했다. 란시엔이 얼떨떨해하는 사이 티엔은 자켓 주머니에서 티켓 두 장을 꺼내 안내원에게 건넸다. 공연장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비로소 날짜를 확인할 짬이 생겼다. 란시엔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2주 전. 공연 시작 5분 전의 시간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정말이라고 했잖아요.” 

 “네가 거짓말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도, 갑자기 믿는 것도 어렵단 말야… 꼬집었을 때 안 아프면 꿈이라던데 시험해 볼까.” 

 

 란시엔은 말과 동시에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어 보았다. “아파…” 가벼운 아픔에 눈썹이 절로 찡그려졌다. 티엔은 빙그레 웃고는 “곧 시작해요.” 하고 말했다. 그 말대로 곧 불이 꺼지고, 배우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 날 두 사람이 본 공연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해석한 창작 뮤지컬 작품이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현대에서 환생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나가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이야기의 클라이막스, 두 주인공은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서로를 마주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제 아름다운 귀족가의 자제들이 아니다. 평범하고 가난한 대학생일 뿐이다. 로미오의 길거리 공연에 방문한 줄리엣은 동전을 기타 케이스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 로미오, 당신의 이름은 로미오인가요? 

 - 난 이제 로미오가 아니야. 난 그냥 나 자신이지. 

 - 저도 줄리엣이 아니에요. 예전 같은 아름다움은 없어요. 

 - 장미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색과 향으로 아름답다는 걸, 너도 알잖아?

 - …….  

 

 무대 위, 두 배우가 서로를 바라본다. 문득 고개를 돌린 란시엔은 티엔과 눈이 딱 마주쳤다. 티엔은 어쩐지 뜨끔한 얼굴로 입가를 가렸다. 불쑥 장난기가 샘솟은 란시엔은 눈을 가늘게 뜨고 티엔을 쳐다보며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공연 안 봐?’

 ‘이미 본 거잖아요.’ 

 ‘그럼 공연 안 보고 뭐 보고 있었는데?’

 ‘…….’

 

 대답이 없는 티엔을 보며 란시엔이 소리 없이 키득거렸다. 

 

 ‘불량 관객이네.’ 

 ‘보고 싶은 걸 어떻게 해요.’ 

 ‘맨날 보고 있잖아.’ 

 ‘공연 보느라 이 때 형이 어떤 얼굴인지 못 봤으니까, 보고 싶어요.’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엔 란시엔이 조금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에도 티엔의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무대 위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를 향한 세레나데를 부르고,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지만 노랫소리도 대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시선을 이번에는 란시엔도 피하지 않았다. 

 

 마침내 공연이 끝나고, 2주 전처럼 우레와 같은 박수가 객석에서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과거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정말이네, 정말 돌아왔잖아….” 박수를 치던 란시엔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란시엔을 바라보던 티엔이 대답했다. 

 

 “다시 돌아가도 돼요.” 

 “한 번 온 곳은 다시 못 오고, 그런 건 없는 거지?” 

 “음, 네.” 

 “여기서 뭔가 바꾸면 어떻게 돼?” 

 “다시 돌아갔을 때도 바뀌어 있게 돼요.” 

 “과거를 바꿔서 지금을 바꿀 수 있다는 거야?” 

 “그렇죠.” 

 

 재미있게 본 공연의 커튼콜 도중에 나누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비일상적인 대화였다. 란시엔은 다시금 얼떨떨한 감각을 느끼며 떠오르는 의문을 아무거나 말했다. 

 

 “그럼 만약에 여기 있는 너하고 지금의 너하고 만나면?”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는데요.”

 “타임 패러독스 같은 거 있잖아.”

 

 두 사람은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이야기를 나누며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난공티엔의 간결한 설명에 의하면, 타임 패러독스라든가 과거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만났을 때 생기는 딜레마 같은 복잡한 일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어떤 원리인지,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티엔은 이 능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는데,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고 했다. 왜 이런 능력이 생겨났고 어떻게 구동하는지는 모르지만, 난공 집안의 남자들은 이 능력을 자신의 인생에 나름대로 사용해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왠지 기분이 엄청 얼떨떨하네….” 

 “진짜예요.” 

 “그건 이제 알겠지만 말이야…….” 

 

 솔직히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직접 겪은 이상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티엔은 조금 불안해하는 얼굴로 란시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티엔은 미친 거 아니냐든가, 우리 사이를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따위의 말을 겁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자 란시엔은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져서 무작정 그의 샤오티엔을 안심시켜주고 싶어졌다. 

 

 “다른 곳으로 가봐도 돼?” 

 “과거면 어디든요.” 

 “음, 그럼.”

 

 란시엔이 장난기 어린 얼굴을 하며 티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 처음 사귀게 됐을 때 어때?”

 “…….” 

 “못 가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우물쭈물하던 티엔은 결국 극장 창고의 청소도구함 안에 갇히고 말았다. 딱 붙은 두 사람이 다시 눈을 감고, 몇 초 정도 숨을 참았다. 캔 콜라 흔들기가 한 번 더 이어졌다. ‘이것도 두 번 했더니 익숙해지는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이번에는 청소도구함이 아니라 옷장이었다. 

 

 “여기…”

  “…….” 

 “우리 집이네.” 

 

 란시엔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벽장을 빠져나왔다. “지금은 우리 집이 아니긴 하지만.” 그가 덧붙이며 신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거하기 전 란시엔의 자취방은 단촐하긴 하지만 아늑했다. 두 사람 모두 조금씩 어린 얼굴에, 예전에나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이 때 티엔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더라?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란시엔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샤오티엔? 너 얼굴이….” 

 “……괜찮아요.” 

 

 티엔의 얼굴은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땐 안 이랬는데.” 란시엔이 조금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그때는 얼굴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씻고 갔어요.” 티엔이 머쓱한 듯 중얼거리며 얼굴을 소매로 닦아내려 했다. “잠깐만.” 그때 란시엔이 덥석 티엔의 손목을 잡았다. 난공티엔은 눈물로 젖은 눈을 깜빡이며 란시엔을 바라보았다. 

 

 “내가 닦아줄게.” 

 

 그렇게 말한 란시엔이 손으로 티엔의 뺨을 닦아냈다. “그땐 미안해.” 부드럽게 눈가와 뺨을 쓸어주던 란시엔이 중얼거렸다. “널 이렇게 울리다니 내가 바보였나 봐.” 티엔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단란시엔과 난공티엔이 처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인 곳. 이 집에는 이런저런 추억이 묻어 있었다. 그 추억 속에 그대로 다시 돌아와 지난날을 되새긴단 건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또 충만하기도 했다. 

 

 “형. …저 졸업하고,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요?”

 “아, 공연장에서? 나 공연할 때 왔었잖아. 깜짝 게스트였는데.”

 

 대수롭지 않게 답하던 란시엔이 문득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 공개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그 공연 끝나고 형 메신저 프로필에서 봤어요.” 

 “응? 거기 날짜는 안 나와있었을 텐데.”

 “찾아봤는데 모르겠어서…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서, 그 공연장에 매일 출석했어요.”

 “뭐라고?”

 

 란시엔은 경악했다가, 놀라워했다가, 감탄했다가, 웃어버렸다. “……기분 나쁜 건 아니죠?” 난공티엔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물었다. 꼭 마술의 비밀을 밝힌 다음 관심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술사 같았다. “아니야, 아냐. 그런 거.” 하지만 이건 마술 따위가 아니다. 마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진실은 진심 안에 있던 것이다.

 

 그 날, 란시엔은 아는 밴드의 공연에 깜짝 게스트로 참여했었다. 즉석에서 결정된 사안이라 스케쥴이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객석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티엔이 어색한 얼굴로 관객들 사이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반가운 기분에 란시엔은 백스테이지에서 그를 만났다. 졸업 했겠네. 어느 학교 갔어? 어떻게 지내? 수험 때문에 잠깐 끊어졌던 연락은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그 안에 이런 고군분투가 숨겨져 있었다니. 

 

 “알면, 형이 싫어할까 봐.”

 “아냐, 안 싫어. 그냥 신기해서 그래.” 

 “기분 나쁠 수도 있고.”

 “아니라니까. 그냥 그렇게 시간을 돌아서 찾아왔다고 생각하니까 좀….”

 “…….”  

 “좀… 너무 귀여워.”

 

 결국 단란시엔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난공티엔은 이제서야 안심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란시엔의 방 안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의 한 조각. 급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바꾸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겪은 일을 한 번 더 되짚고 소중히 하는 시간을 가졌을 뿐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란시엔이 물었다.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어?”

 “제가 기억하는 만큼은요.”

 “그럼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어딘데요?”

 

 란시엔이 티엔에게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고등학생 때요?”

 “응.” 

 “알겠어요.”

 

 두 사람은 다시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 둘이 갇히는 것도 이쯤 되니 익숙해지려고 했다. “눈 감을게.” 단란시엔은 시간여행의 규칙에 충실했다. 그건 난공티엔도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은 별 문제 없이 시간을 빠르게 되감아 갔다. 머리가 거세게 흔들리는 감각. 몇 분 같은 몇 초를 견디고 나자, 어쩐지 공간이 더 좁아진 게 느껴졌다. 여긴… 

 

 “……사물함 안인가?”

 “그런 것 같은데요. 저, 저기. 형. 잠깐만…”

 “잠깐, 잠깐, 나 쏟아질 것 같은데……!” 

 

 결국 란시엔이 무게중심을 잃고, 사물함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두 사람이 우당탕 쏟아졌다. 세로로 긴 철제 락커는 아무래도 두 사람이 갇혀 있기에는 너무 비좁았던 모양이었다. 어둑어둑한 체육창고 안, 문 틈새로 새어드는 희미한 불빛이 내부를 비췄다. 먼지투성이의 매트 위로 몸을 겹친 건 열일곱 살의 난공티엔과 열아홉 살의 단란시엔이었다. 티엔은 자켓에 조끼까지 갖춰입은 데 비해 란시엔의 와이셔츠엔 넥타이조차 없었다. 매트 위에 눕혀진 란시엔이 살짝 난처해하며 말했다. 

 

 “지금 몇 시야?”

 “방과 후예요.” 

 “들키는 건 아니겠지?” 

 “……아마도요.” 

 

 두 불량아는 살금살금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행히 체육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을이 지는 시간대, 1학년과 3학년은 주홍빛으로 물든 복도를 걸었다. 중간중간 미술실이나 음악실, 예전에 쓰던 교실이 나오면 들어가 보기도 했다. 희미했던 추억이 다시금 색채를 입는 감각은 란시엔에겐 낯설고도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지나치는 교실들을 앨범처럼 뒤적이면서 걷다 보니, 학교를 빠져나왔을 때는 어느덧 해가 저물어 밤이 되어 있었다. 

 

 “벌써 어두워졌네.”

 “그렇네요. 아직 해가 긴 계절은 아니었죠.”

 “흐음. 샤오티엔, 지금부터 잠깐 시간 있어?” 

 

 란시엔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티엔은 언제나처럼 “네.” 하고 진지하게 답했다. “으하하.” 란시엔은 시원스럽게 웃고서 티엔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디로 갈지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고등학생은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닷바람을 마주했다. 아직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 란시엔은 한참동안 연인과 함께 모래사장을 걷다가, 곧 바닷가 근처에 자리잡았다. 

 

 “아, 기타를 안 가져왔다.” 

 “다시 가져올까요?”

 “아냐, 괜찮아. 옆에 앉을래?”

 

 열아홉 살의 란시엔은 기타 대신 티엔의 손을 잡았다. 입가에서 흘러나온 그때 그 노래는 처음 불렀을 때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느렸다. 분명 시간을 돌아왔는데.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아주 느리게 느껴진다. 문득 란시엔은 옆에 앉은 티엔을 바라보았다. 손을 꼭 잡은 채 세레나데를 듣는 그는 이제 로미오가 아니지만. 

 

 “샤오티엔.” 

 “네, 형.” 

 

 장미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색과 향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는 정말 그가 누구여도 상관 없다. 어리고, 조금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툴던 열일곱 살 난공티엔. 이 소년은 좋아하는 선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되감고, 반복하며 여기까지 건너왔다. 그 과정을 모두 알게 되자 란시엔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나 할 말 있어.”

 “할 말이요?”

 “응.”

 

 란시엔이 장난치기 직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연인의 맨손이 쥐여져 있었다. 여기엔 아름다운 야경도, 잘 차려입은 옷도, 맛있는 요리도 없고 차가운 바닷바람과 밤바다, 팔랑거리는 교복 뿐이지만. 그래도 지금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은 물 속에서 목욕하던 도중 진리를 찾고, 또 어떤 사람은 꿈 속에서 진리를 본다고 한다. 그런 위대한 발견의 순간들처럼. 란시엔은 이 순간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 안에서 불변의 진리를 깨달았다. 

 

 “우리 결혼하자.”

 

 그건 내가 널 사랑한다는 사실이야. 

 

 “제대로 준비도 못 했고, 반지도 없고… 나 지금 별로 근사하지도 않지만…….”

 

 앞으로 네 앞에서 부끄러운 일도 있을 거고, 또 속상하고 슬픈 날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을 모두 너와 함께 보내고 싶어. 너와 함께라면 몇 번이고 그 날들을 되짚어보며 ‘좋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승낙해줄래?”  

  

 란시엔이 깍지 낀 손을 들어올려, 연인의 왼손 약지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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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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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티엔

Nangong Tien

데밋, 생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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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시엔

Dan Ransh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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