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이상해지고 있어.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건 해링턴 고등학교의 아웃사이더인 키르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른들이 이상해. 라고 말하는 건 사춘기 소년의 투정처럼 들렸다. 손에 잡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핑계가 하나 더 필요했다. 어차피 걔들은 아무것도 이해 못해. 내가 뭐라고 말하든 간에 믿지 않을 테니까. 키르쉬는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까맣게 칠한 손톱 끝을 까득까득 깨물다 내린 판단에도 키르쉬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한가지 더 있었다. 카메론에 대한 거였다. 그러니까 너 말이야.
“아니지?”
카메론의 팔목을 붙든 손이 갈고리처럼 억세게 조여왔다. 키르쉬가 주렁주렁 달고 있던 빈티지 필리그리와 대거 참이 삐죽하게 튀어나와 살갗을 찔렀다. 카메론은 키르쉬의 상상 속에서 촉수괴물이자 외계인인 자신이 그녀의 악세사리에 찔려 펑 하고 지금의 몸을 벗어던진 뒤 본체로 돌아가는 모습을 가정해 봤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키르쉬는 경악하겠지.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볼 것이다. 경악하며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때 카메론은 키르쉬를 계속 웃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무표정한 얼굴로도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고스와 너드, 그리고 괴짜의 공통점은 무표정한 얼굴인 것 같았다.
카메론은 뭐가? 라고 되묻는 대신 키르쉬에게 한 가지를 부탁하기로 했다.
“나 물 한잔만 줄래?”
그러고보면 갈증이 느껴졌다. 닫힌 체육관 문 너머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은 금방 어둑해졌다. 그가 아무리 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리고 키르쉬에게 달콤한 말을 퍼붓는다 해도 그녀에게는 너와 내가 동류라는 진실만이 유효했다. 키르쉬는 이상 현상에 대응할 사람을 찾는 동시에 모든 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그림자가 길어지면 어둠이 내려앉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니. 사실은 그게 가장 중요했다. 자신이 갈증을 느낀다는 것. 카메론은 키르쉬에게 자신의 고향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끝도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진 바다. 썰물 때를 맞춰 빠져나간 바닷물은 모두 말라 버렸다. 남은 이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한다. 진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을 일들, 모래알처럼 낱낱이 흩어져버릴 신뢰 같은 것. 그걸 위해 진실로 가장한 거짓말들로 벽을 세워왔다.
“하하. 전학온 지 한 달도 안된 '에일리언'에게 원하는 대답을 듣는다면 마음이 좀 놓이나?”
이방인이라는 의미를 강조하자 키르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펜을 유통한 것도 너였지."
카메론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마 너만 제정신인 것 같아. 알아듣겠니?”
제정신이라니. 카메론이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키르쉬, "내가 믿을 구석은 너뿐이야." 그런 뒤 예전으로 돌아가 상상해본다. 과거의 그는 신체를 뻗어 나갈때마다 주위는 온통 물이었고 몸집을 불리고 개체 수를 늘리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갈곳 없는 외톨이였다.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목이 근질거렸다.
"네가 아웃사이더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거 알아. 하지만 자신을 감추는 데에 지치지 않았어? 난 그렇거든." * (원작 대사)
키르쉬가 목석처럼 굳은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목에서부터 뻗어 나온 기다란 것들이 키르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길어진 그림자가 합쳐지는 때부터는 손을 뻗어 그녀의 고개를 받쳐들었다. 그 얼굴을 보며 짧게 키스했다.
“거짓말을 하다니.”
카메론은 그 말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했다.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입 안에서 쏟아지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바람의 매서운 기운 탓에 눈이 금세 뻑뻑해졌다. 한 마디를 하려는데 목에서 거품이 낀 듯 쉰 소리가 나왔다.
"그러게. 왜 그랬을까. 하하... 이제는 중요하지 않네."
키르쉬가 펜을 꽂아 넣은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무심한 인상에 올라 앉은 깊은 그늘과 앙다문 표정에 서린 원망은 카메론이 쳐다보고 있는 동안 불길처럼 깊고 커졌다. 분명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는데 몸이 탈듯이 뜨거웠다. 눈에서는 후두둑, 눈물 대신 종족을 보존하고 싶은 세포들과 개체들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카메론은 뒷목을 받쳐든 손을 떼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