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2014 · 113분
액션 · SF
가까운 미래, 미믹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 위기를 맞는다. 케이(케이=로프)는 자살 작전이나 다름없는 작전에 훈련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배정되고 전투에 참여하자마자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 그가 다시 그 끔찍한 날이 시작된 시간에 다시 깨어나 다시 전투에 참여하게 되고 다시 죽었다가 또 다시 살아나는 것. 외계인과의 접촉으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겪게 되는 타임 루프에 갇히게 된 것이다. 타임루프 속 케이는 스킬라(레네스킬라=반)와 만나 반복되는 시간을 함께 한다.
포연이 걷히자 반파된 전차가 보였다. 앞 유리의 구멍부터 방사형으로 훼손된 전차는 탑승객의 사인도 알만했다. 희부연 저녁 어둠에 묻힌 전장은 낮 동안 있었던 전화를 기억하고 있었고, 되새김질하듯 다시 포화로 뒤덮였다. 기관총의 발포 음이 우울한 적막을 남김없이 지워버린 것이다.
세차게 솟구친 모래 사이로 미믹이 튀어나왔다. 예고한 대로였다. 밤에 적응한 눈으로 총구 화염이 튀었다. 스킬라는 번지는 시야를 무시하고 왼쪽으로 과녁을 몰았다. 낌새를 눈치챈 미믹이 달려드던 순간, 머리 위 와이어가 끊어졌다. 7.62mm 탄환을 튕겨내는 몸체도 공중에서 떨어지는 철근에는 무참히 뚫릴 수밖에. 몇 번 바르작거리던 촉수는 이윽고 움직이지 않았다. 스킬라는 아직도 허공에서 휘청이는 크레인을 올려다보았다. 와이어는 정확히 반으로 갈려 있었다. 던진 블레이드를 회수해 온 케이는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연습 얼마나 했어?”
“일 년 정도요.”
“너무 멀리 던졌잖아. 몇 번 더 연습해야 하는 거 아냐?”
케이는 블레이드를 모래밭에 꽂아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정하겠습니다.”
“삼십 분이면 쿡 카운티까진 갈 수 있지?”
“네. 매복해 있는 건 저걸로 마지막입니다. 바로 직행하시죠.”
스킬라는 곧바로 슈트의 해제키를 입력했다. 아까까지 시큰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버려진 전장을 가로질러 움직일 수 있는 지프차를 찾아냈다. 누가 보면 케이가 아닌 저쪽이 루프를 겪었다고 볼만한 속도였다. 물론 본다고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스킬라는 납득 없이 되풀이되는 하루를 납득했다. 이전에 같은 피를 받아들였던 경험 때문이었다. 케이는 설득에 소질이 없었기에 설명이 제거된 수용을 최고의 행운으로 생각했다. 그 후엔 내내 불운했기 때문에 마지막 행운이라 보아도 좋았다. 하루를 되풀이하는 리셋 버튼은 죽음이었고 스킬라는 절대 봐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고통을 더했으면 더했지.
“악의는 없지만.”
시동을 건 스킬라가 말했다. 케이는 자세를 바로 하고 옆좌석에 앉았다.
“사람이 총을 들었으면 바로 빠져. 지져버리기 전에. 넌 뜨거운 것도 몰라?”
확실히 악의는 없다. 예의도 배려도 없지만 애초에 누구도 스킬라에게 그런 걸 기대한 적 없었다. 어쨌든 여긴 외계인과 싸우는 전선이었고, 병사라 하면 적을 잘 죽이면 된다. 정해진 분대를 떠나는 건 탈영이지만 스킬라의 표현에 의하면 진군이었다. 이 전선에서 다른 전선으로 갈 뿐이다. 길이 정해진 후로 두 사람의 목숨은 12시간이 늘어났다.
계획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두 사람이 몸담은 분대는 시카고의 벙커에서 집중포화를 맞아 24시간 안에 전멸한다. 그 전에 미믹들이 매복한 지역을 선제공격하고 원조를 받기 전에 분대를 빼낸다. 이 경우 분대의 생존 기간은 4시간 정도 더 길어진다. 근처 500km 내에 미믹의 원조군이 없는 지역으로 대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으니까. 처음 오십 번째 시도까지는 훈련을 병행하며 지름길을 찾았고 백육십 번째 시도까지는 훈련을 병행하며 상부를 설득하려고 했다. 운전하며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계획이 세워졌다가 사라진 지금. 두 사람은 나사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외계인을 상대로 실험하고 있단 소리다.
케이를, 그리고 이전에는 스킬라를 루프하게 만든 개체를 추적해서 한 놈이라도 죽여보면 이 되풀이의 비밀이 풀릴지도 몰랐다. 물론 후보군을 기억하는 유일한 데이터베이스는 두 사람의 뇌였으니 이렇게 한밤중에 탈영해 줄 인원도 한 명뿐인 초라한 연구팀이었다.
“뜨거운 온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견딜 순 있습니다.”
“그걸 왜 견…. 됐다. 답답한 놈.”
케이는 잠시 굽혀진 등을 펴고 다시 자세를 바로 해 앉았다. 어둠 속을 헤드라이트가 불안하게 훑었다. 여긴 와본 길이었다. 스킬라에게 운전을 굳이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담배를 버린 사람이 빠르게 끼어들었다.
“옆구리야. 등이야.”
“….”
스킬라는 담배를 버린 손으로 권총을 꺼냈다.
“왼쪽 옆구리입니다. 하지만 이십 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겠어요.”
케이는 손을 뻗어 차 안의 조명을 켰다. 슈트를 벗은 안쪽은 간소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검은색 옷임에도 확연히 명도가 다르게 옆이 젖어 있었다. 피는 아직 고이지 않았지만, 뚝뚝 흘러내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멀리 던진 게 아니라 네가 느려진 거였네.”
“죄송합니다. 다시 시작하시죠.”
권총 끝이 까딱이다가 앞 유리 방향을 향했다. 스킬라가 두 손으로 핸들을 쥐고 빠르게 커브 길을 돌았다.
“도망갈까?”
뒤이은 말에는 약한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일주일에도 이틀은 쉬는데. 하루 정도 쉬는 거야. 마을로 내려가서 술집이나 가자.”
“이 근처에 내려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독수리 깃발을 달아둔 펍에 간 적 있거든.”
“거기라면 좀 멀어졌을 겁니다.”
“간 적 있어?”
케이가 답하지 않자 스킬라는 질문을 바꿨다.
“몇 번 도망가봤어?”
“기억하는 건 세 번이요.”
“거짓말 하지 마.”
“…죄송합니다. 일곱 번이요. 잘 아시네요.”
“넌 거짓말 하면 티가 너무 나.”
일곱 번이라. 스킬라가 입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일곱 번 만든 정도군.
“도망 가면 몇 시간쯤 살아?”
“동이 틀 때까진요. 보통은.”
케이가 한숨을 쉬며 뒤척였다. 지금은 보통이 아니란 뜻이었다. 스킬라는 결국 혀를 차고 도로를 가로 질러 숲속으로 차를 처박았다. 거친 초입과 다르게 차는 숲속을 쭉쭉 뻗어 꽤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헤드라이트의 불을 끄니 내부 조명이 무슨 취조실 마냥 험악해졌다. 스킬라는 케이의 티셔츠를 들어 상처를 확인했다.
“다시 하자. 그 전에 여기….”
“물이라면 뒤쪽 배낭에 좀 있습니다. 식량은 글로브 박스에 초콜릿과 사탕이 있고요.”
“…그래. 그런데 내가 찾던 건.”
“마약성 진통제는 우리 사정에 바라긴 힘들죠. 진통제도 없습니다. 설사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 조금도 안 할 겁니다. 애초에 경험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 차 몇 번이나 탄 거야?”
스킬라는 의욕을 잃고 좌석에 깊게 몸을 기댔다. 따라서 케이도 등받이에 목을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출혈이 지속되어 통증보다 다가오는 오한이 겁났다. 그건 보통 길고, 질기고 통증을 멀어지게 하며 삶이 끝나간단 걸 상기시켰으니까.
“일 년이 아니지?”
“네.”
“한 번 되돌리는 거에 하루씩 쳐서. 이번이 몇 년째야?”
“십오 년이요.”
마침내 고인 피가 시트 밑으로 흘러내렸다. 케이는 무감하게 앞을 보았다. 슬슬 되돌려도 괜찮다. 이번 일은 변수가 아니었다. 원래 전장을 통과할 때 케이는 30% 확률로 부상을 입었다. 매번 총알은 같은 궤적으로 날아가고 미믹은 같은 자리에서 솟구쳤지만, 피와 살의 육체를 움직여 달리고 작전을 수행하는 건 인간이었으므로. 같은 박자로 달리더라도 열 번 중 세 번은 스킬라를 되돌아보았다. 그 찰나에 사지가 꿰뚫리면 운이 좋았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말해.”
“제가 죽으면 보통 혼자 남아 뭘 합니까?”
스킬라는 어깨만 으쓱했다.
“보통은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이번 한 번뿐이라.”
“그렇군요.”
“근처에 숨어 있는 놈 찾아서 죽을 때까지 싸워볼까?”
“별다른 일이 없다면 동틀 때까진 살아 계실 거 아닙니까.”
“그렇지.”
“독수리 깃발이 있다는 펍이라도 가면 어때요.”
눈이 감겼다. 케이는 좋은 신호라고 해석하기로 했다. 곧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스킬라도 그걸 눈치챘는지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좋네.”
“어쨌든 난 자살은 안 해. 그건 너무 많이 했거든.”
“그 얘기도 좋네요.”
“최대한 살아보자고. 나도. 너도.”
“그거 이상하게 위로가 되네요.”
“이상하다고? 죽을 때가 되어서 솔직해졌나.”
내부 조명을 껐는지 감긴 눈 너머로 빛이 희미하게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다시 하자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닌가. 케이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스킬라답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밤의 숲과 다른 새벽의 어둠이 시야를 채웠다. 전투복과 전투화는 왼쪽 머리맡에. 조심하지 않으면 날카로운 야전 침상에 손바닥을 베인다. 익숙하게 이층 침대에서 내려온 케이는 주저 없이 앞으로 달린다. 지하 2층의 사격장. 왼쪽에서 세 번째. 글록 34를 들고 있는 레네를 찾는다. 이름을 부르면 스킬라로 부르라는 욕을 얻어먹는다. 이 편이 설명이 빠르다고 말하기 전까지 한 번 정도 쏘일 뻔 한다. 하지만 언제나. 결국 레네는 케이를 따라왔다.